All kinds of things : 이길우

21 June - 26 July 2025

선화랑은 2021년 《108 & Stone》전 이후 4년 만에 이길우(b.1967) 작가의 개인전 《All kinds of things》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 《 All kinds of things 》는 다양하고도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개인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을 다층적으로 들여다보며 인간 존재의 양면성에 대한 아이러니를 주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주제를 작품으로 끌어들여온 계기는 아직 종식되지 않은 참혹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상을 전한 뉴스 기사를 통해서였다. 무차별한 공격으로 인해 아무런 이유 없이 죽어간 힘없는 아이들과 여성, 노약자, 일반 시민 등 인간의 처참한 모습을 접하게 되면서이다. 어떤 이유로, 어떠한 목적으로, 과연 누구를 위해 이러한 끔찍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 것인지 그러한 상황을 자초한 인간의 욕망과 본성에 대해 되짚어 보게 되었다. 또한 그 사건은 마치 현대사회 안에서 전쟁처럼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작가는 자신의 내면과 주변 인물들의 본성에 대하여 더욱 관심을 가지고 세심하게 관찰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작가가 재직 중인 대학 내 학생들의 모습, 길거리의 행인, 카페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가족, 이웃 등 주변인들의 모습은 작가만의 독특한 시각적 재해석을 통해 화면 안에 존재하고 있다.

 

이번 전시의 대표 시리즈인 《 All kinds of things 》는 여러 동세의 사람들, 불분명한 국적의 인종과 연령대의 다양한 인간 집단으로 보이는 군중의 모습을 마치 조형물이 서있는 것처럼 표현한 비구상적 화면이다. 인간의 다양성은 오방색으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관계성은 조각조각 이어붙여진 조각보의 패치워크의 모습에서 착안하여 가장 한국적인 소재로써 가장 보편적인 또는 양립적인 인간의 관계성을 한 화면에 모아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향불 작업으로 사람의 이미지가 형성된 순지 전면과 교집합처럼 스케치한 사람들 사이에 겹치는 부분들에 오방색을 채우고 칠하지 않는 부분은 공간으로 남겨둔 채색한 장지 후면을 하나로 배접하여 형성된 복잡한 구조는 인간의 다양한 관계성을 시각화하고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건들의 혼재된 모습을 이야기하기도 하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인간 군상의 풍경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동시대의 현실을 함께 성찰하는 사유의 장이자, 예술이 어떻게 시대의 정서를 반영하고 인간 존재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는지를 그려내고자 한 작가의 작업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전통 회화의 형식성과 현대적 관점을 결합해 온 작가는 인간과 사회, 기억과 현실 사이의 복합적인 관계망을 회화적 시공간에 펼쳐 보인다. 《여행자》 시리즈는 작가의 가족여행 도중 우연히 마주하게 된 어느 젊은 여성의 불온하고도 공허한 모습에서 비롯되었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 치여 삶의 목적과 가치를 상실한 듯 점점 무표정해져가는 현대인의 모습이 작가에게 매우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다. 오히려 인간은 각자 다양한 색을 지닌 본연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존재인데 사회가 바라는 좋은 직장, 경제적 여유 등 보편적인 삶의 목표를 지향하는 획일화된 현대인의 모습을 지양하며 억압된 삶에서 벗어나 좀 더 자신의 삶의 방향이 유연하고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작품에 담아내었다.

 

그 희망은 《여행자》시리즈 외에도 《다른 시선의 관객》, 《행인》, 《이웃사람》 등의 작품에서 엿볼 수 있는데, 향불 작업과 자유롭게 잘라낸 다양한 색지로 우연성과 재미를 곁들여 콜라주한 인간의 모습을 중첩된 작품으로 표현해 내었다. 또한 화면 안에 남성과 여성이 중첩된 모습은 각자 다른 입장과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대변하며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이길우의 작품은 멀리서 보면 하나의 실체를 이루고 있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무수히 태워진 흔적의 구멍이며, 뚫려 있어 비어 있는 실체이다. 향불에 타서 소멸된 공간들이 다시 모여 형상을 이룬 전면의 이미지와 후면의 또 하나의 다른 이미지를 함께 배접하여, 향불이 그려낸 형태와 바탕의 그림이 중첩되면서 이중적인  이미지가 동시에 떠오르게 되는데 이것은 생성과 소멸의 과정이 반복되는 작가의 작업성을 빌어 인간의 양면성, 양립적인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드러내고 있다.

 

하나의 밑그림을 그린 후 향으로 그것을 태우며 소멸시키고, 사라진 흔적을 다시 다른 그림과 배접하여 새로운 형상을 재구성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작품은 단일 이미지가 아니라, 겹겹이 중첩된 다층적 내러티브와 철학적 깊이를 가진다. 최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불안한 국제정세 속에서 다시 한번 인간 서로의 관계성을 되돌아볼 필요성을 느낀다. 인류는 점점 더 초고속, 초근접한 커넥션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개인 또는 특정 집단의 세력만으로는 결코 존재하기 어려운 현실을 직시하고 어떠한 관계성을 만들어가며 개인의 삶을 영위하고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조화를 이루어 가야 할지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희망한다. 동시대의 화두와 보편적 가치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새로운 표현을 시도하고 있는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인간의 형상 속에 삶과 사회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다양한 인간상을 풀어내며, 예술이 던지는 근원적인 질문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