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추상미술 1세대 여류작가 석난희(b.1939) 1962년 데뷔한 이래 60여 년 동안자연을 작업의 중심 화두로 삼아왔다특정한 풍경이나 자연의 형상을 묘사하기보다 선과 반복되는 몸짓, 색의 층위, 지워진 흔적과 불규칙한 표면을 통해 자연을 감각하는 과정과 그 내적 리듬을 화면에 옮겨왔다.

 

석난희는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에서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김환기의 지도를 받았다. 재학 중이던 1962년에는 김환기에 의해 최우수 학생으로 선발되어 첫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같은 해 반예술·실험미술을 지향한무동인창립전에 참여하면서 전위미술 운동에 발을 들였다. 김환기의 권유로 1964년 프랑스로 건너가기 직전에는 앵포르멜 그룹악뛰엘의 마지막 전시에도 출품하였고, 1965년부터 1969년까지 파리 국립 고등미술학교에서 석판화를 전공하였다.

 

파리 체류는 자신의 예술적 방향을 깊이 질문하는 중요한 시기였다. 석판화를 공부하던 석난희는 당시 파리에 머물던 이응노의 아틀리에를 방문하며 수묵화를 새롭게 접하였다. 이 경험은 선과 묽은 안료, 즉흥적인 붓질과 여백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으며, 1969년 귀국 이후 이러한 감각은 회화와 종이 작업에 점차 스며들어 작가 고유의 추상 언어를 형성하는 기반이 되었다.

 

석난희가 작품 활동을 시작한 1960년대 한국 화단은 앵포르멜의 강한 영향 아래 있었으며, 1970년대 이후에는 기하학적 추상과 모노크롬 회화가 주요 흐름으로 부상하였다. 그러나 작가의 작업은 어느 하나의 미술 운동에도 완전히 귀속되지 않는다. 초기 작품에서는 앵포르멜과 연결되는 자유로운 제스처와 물질성이 발견되지만, 석난희의 관심은 실존적 불안이나 격렬한 자기표현보다는 자연과 자아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 놓여 있었다. 작가는 청색과 회색빛이 어우러진 청명하고 리드미컬한 화면을 통해 뚜렷이 구별되는 독자적인 색채 언어를 구축하였다.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석난희의 작업을정갈한 사랑방에서 난을 치는 선비에 비유하며 동아시아 문인화 전통과의 연관성을 짚었다. 이는 중국 송대 문인 소동파가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詩中有畵, 畵中有詩)”고 말한 예술관과도 맞닿아 있다. 석난희의 추상은 서구 회화의 물질적 탐구와 동아시아 회화의 필선, 그리고 시··화 일치의 정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형성되었다.

 

석난희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리움미술관, 포스코미술관 등 국내 주요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1994년 환기미술관이 스승 김환기의 청색 회화를 조명한 기획전 《청색-또 하나의 정신》에 관련 작가로 초대되는 등 김환기와의 예술적 연속성 속에서 여러 차례 조명된 바 있다. 석난희는 선화랑과도 오랜 인연을 이어온 작가이다. 선화랑이 개관한 1977년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1979년에는 두 번째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