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Soong Koo Solo Exhibition: ChaSoong Koo

29 October - 25 November 2025

정물화의 계보와 구자승의 철학적 정물화

 

미술 평론가 노윤정

 

정물화는 미술사의 주변부에 속한 장르로 오랫동안 저평가되었다. 인물이나 역사적 서사에 비해 "사소한 사물"을 다룬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정물화는 바로 그 사소함 속에서 삶의 본질과 인간 존재의 의미를 응축해왔다. 네덜란드의 바니타스 정물은 죽음을 환기하는 해골과 시든 꽃으로 유한성을 설파했고, 샤르댕은 일상적 그릇에 담긴 겸허한 존엄을 포착했다. 세잔은 사과와 병을 반복하여 그리는 과정 속에서 회화의 구조적 질서를 탐구했으며, 모란디는 항아리와 병을 통해 존재의 침묵과 시간의 흐름을 명상했다. 정물화는 단순한 대상의 묘사가 아니라, 시대마다 다른 철학적 질문을 발화하는 장르였던 것이다.

구자승의 정물화는 이 연대기의 맥락을 이어받으면서도 한국 현대회화의 특수한 지점에 서 있다. 그의 화면 속 사물은 극도로 사실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모방의 사실주의가 아니다. 구자승의 정물은 흐르는 시간을 끊고, 변화를 봉인하며, 순간을 영원으로 전환한다. 과일은 썩지 않고, 유리잔의 반짝임은 고정되며, 그림자는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시간의 흐름에서 해방시켜 화면 안에 가두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앙리 베르그송이 말한 '지속(durée)'의 개념과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모란디가 정물의 반복 속에서 질적인 시간의 흐름을 드러냈다면, 구자승은 그 흐름 자체를 차단한다. 그의 회화는 질적 시간의 단절, 다시 말해 "멈춘 지속"을 제시한다. 바로 이 역설적 긴장 속에서 그의 정물은 독자적인 현대적 의미를 획득한다.

발터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aura)의 문제 역시 주목할 만하다. 기계복제가 예술의 아우라를 해체한다고 했을 때, 구자승의 극사실적 묘사는 사진적 이미지와 닮아 있어 아우라의 소멸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 집요한 손의 노동과 화면의 절제된 긴장은 사진을 넘어서는 고유한 현존감을 발생시킨다. 그의 정물은 "너무 사실적이어서 오히려 비현실적인" 긴장을 만들어내며, 그 긴장 속에서 아우라는 다시 생성된다.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적 지각 이론으로 본다면, 구자승의 회화는 보는 행위 자체를 사유하게 한다. 현실 속 사물은 반드시 변화하고 소멸하지만, 그의 화면 속 사물은 영원히 멈춰 있다. 관람자는 이 괴리 속에서 지각의 본질을 다시 묻게 되며, 정물은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존재와 환영, 시간과 정지의 경계를 탐구하는 장치로 변모한다.

결국 구자승의 정물화는 네덜란드 정물의 죽음의 성찰, 샤르댕의 일상적 존엄, 세잔의 구조 탐구, 모란디의 명상적 고요를 이어받으면서도, 극사실주의라는 방법론을 통해 고유한 현대적 지평을 연다. 그것은 빠른 속도와 이미지의 소비가 지배하는 시대에 "멈춤"과 "응시"를 요구하며, 관람자에게 다시금 사물의 본질과 시간의 의미를 묻는다.

정물은 늘 사소하게 여겨졌지만, 구자승의 회화는 그 사소함 속에 거대한 질문을 담는다. 화면 속 사물은 우리 앞에 고정된 채로, 그러나 여전히 살아 있는 듯이 응시한다. 그의 정물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정지된 시간 속에서 존재를 사유하게 만드는 철학적 회화이다. 바로 그 점에서 구자승은 정물화의 오랜 계보를 새롭게 갱신하며, 동시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독창적 작가로 자리매김한다.